090512 시편 72편 1~7절
1.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2. 저가 주의 백성을 의로 판단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공의로 판단하리니
3. 의로 인하여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4. 저가 백성의 가난한 자를 신원하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
5. 저희가 해가 있을 동안에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 대대로 그리하리로다
6. 저는 벤 풀에 내리는 비 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 같이 임하리니
7. 저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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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2편은 솔로몬의 시라고 나온다. 그러면 솔로몬이 지은 시 인가? 를 생각해 본다면 그 질문에 대한 다른 답이 19절에 나와있다.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찌어다 온 땅에 그 영광이 충만할찌어다 아멘 아멘.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필하다” 다윗의 기도가 필하다고 되어 있다. 그러면 이것이 다윗의 기도인가? 아니면 솔로몬의 시인가? 언뜻 모순 처럼 보이는 시편72편의 저자에 관한 질문의 답은 ‘솔로몬의 시 이자, 다윗의 기도이다’ 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시편은 다윗이 기도한 것이고, 아버지의 기도를 솔로몬이 깨닫고, 솔로몬이 시편의 형태로 아버지의 기도를 기록하고 정리해서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다. 내용상으로는 다윗의 아들을 위한 형태인데, 내용상
(Final Form) 은 솔로몬이 정리한 것이다.
1절 ? 왕 : 다윗을 가리키고 왕의 아들: 솔로몬을 가리킨다. 다윗이 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먼저 하나님 자신에게는 주의 판단력을 달라고, 아들에게는 주의 의를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우리는 아들을 위해서 어떤 기도를 드리는가? 아들의 출세를 위해 기도하는가? 그럴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먼저 드려야 할 기도가 있는데, ‘주의 판단력’을 ‘주의 의’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것이 세상에서 잘 되고, 복을 받는 길이기 때문이다. 아들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위해 기도 할 때에도 주의 판단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 삶속에 정말 귀중한 것, 꼭 필요한 것이 바로 판단력이다. 추진력도 중요하지만 잘못된 일을 열심히 추진한다면 다시 되 돌아와야 한다. 그 과정이 더 힘이든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구해야 할 것은 주의 판단력이다. 그것을 가지고 주님의 뜻을 깨달아서 그 다음에 그 일을 추진하는 추진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주의 판단력을 얻는가? 무엇을 판단하는가? 주의 뜻을 판단하는 것이다. 나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정말 어디 있을까? 주의 뜻을 판단하는 것이 진정한 판단력일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12:1~2)
하나님의 뜻은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다. 나 자신을 향한 것 이던지, 우리 교회를 향한 것 이던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것이 바로 판단력이다. 그것을 우리가 얼마나 절실히 필요로 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다윗이 자신과 그의 아들을 위해 기도할 때, ‘주여 주의 판단력을 저에게 주시고, 주의 의를 제 아들에게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한 것이다.
주님의 뜻을 판단 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주의 판단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하셨으니까, 아이들을 위해서 이것 저것 현실적인 것을 구하기 전에 지혜를 달라고 구해야 한다. 지혜가 부족한 자도 구하면 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그 약속을 붙들고 지혜를 구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주의 판단력을 가지고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구해야 한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 함이니” (약 4:2) 계속 하나님께 구하는 자에게 결국에는 주시는 것을 보게 된다. 자신이 무엇을 구하던지 자신에게 주어진 다면, 구할 것은 바로 지혜일 것이다.
지혜를 구하여 주의 판단과 뜻을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것과 동시에 어떻게 우리가 주의 판단력을 가질 수가 있는가? 주의 판단력이 주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라면, 주의 뜻을 담고 있는 말씀을 구하고 찾고 묵상하지 않고 어떻게 주의 판단력을 가질 수가 있는가? “그러므로 내가 범사에 주의 법도를 바르게 여기고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시 119:128) 주의 법도는 주의 말씀이다. 계속 변화되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려면, ‘하나님 제게 지금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보내셔서 어둠속에 방황하는 저를 인도해 주세요’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구해야 한다.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시 36:9)
우리는 캄캄한 어둠 속에 헤메일 때가 많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면 어둠을 걷히고 그 말씀이 나에게 행할 길을 보여준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가기 위하여 주의 말씀을 구하고 그 말씀이 비춰주는 길로 향하여 살아가고 있는가? 이런 자세로 살아간다면, 무슨 일을 당해도 내 생각대로, 취향대로, 내 뜻대로, 욕망대로 행하지 않고, 상황에 떠밀려 행하지 않고 먼저 멈춰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고 그 뜻대로 행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일 것인가?
다윗이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때 무엇을 구하여야 하는지 1절 말씀을 보고 알 수있다.
그러면 이렇게 기도와 말씀으로 주의 뜻을 분별하고 살면 어떤 일이 주어지는가? 두 가지가 주어진다. 먼저는 주의 의가 주어지고 그리고 평강이 주어진다.
3절 ? 의로 인하여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준다. ‘No justice, No peace’ 의가 없으면 평강도 없다. 가정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다. 그런데 의를 실행하면 반드시 평강이 따라온다. 그래서 우리가 담대하게 의를 추구하고 실행하며 살아갈 수가 있다. 사람이 대세만 보고 환경만 보고 인기만 따라 행하면 잠시 잘 되는 것 같지만, 반드시 일을 그르치게 된다. 평화가 없기 때문에… 그러나 의를 구하면 평강이 따라오게 된다.
7절 ? 저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이 따라온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 이다. 우리가 평강을 원하는데 우리에게 의가 없으면 결코 평화를 얻을 수가 없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불화가 있는데 어찌 내 마음이 평화가 있겠는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불화를 조장하는 죄가 나에게 있는데 어떻게 마음의 평안을 기대할 수가 있겠는가? 그 의는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내가 지은 죄로 하나님과 내 사이가 불화관계가 이루어 져서 내가 평안을 잃고 늘 불안과 근심과 두려움 속에 살다가 하나님께서 나를 돌아보시고 은혜를 베푸시자, 주님의 은혜로 내게 의가 주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신칭의’ (Justification by Faith) 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된다는 성경의 진리이다. 주님의 은혜를 받아 의를 얻게 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케 되어 내 마음속에 평화가 깃들게 되고, 그 의가 나 개인으로 부터 교회로 사회로 확장되는 것 만큼 의가 평강을 가져 온다는 것이다. 의가 있을 때 평강을 누릴 수 있는데, 그 의는 하나님의 뜻을 지향할 때,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얻어진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갈 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기도 제목이 있다면 1절의 말씀 처럼 주의 판단력을, 주의 의를 우리에게, 우리의 자녀에게 달라고 구하여서 평강이 가득한 삶을 살게 되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