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3편 1~20]
1.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2. 나는 거의 실족할뻔 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뻔 하였으니
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4.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5.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6.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7.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8.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9.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10. 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11.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12.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13.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14.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15.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대하여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
16.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8.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19.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20.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73편은 아삽의 시 이다.
74편, 75편 ~ 아삽의 시. 총 12개의 시편이
아삽에 의해 지어졌다. 아삽은 다윗
왕조의 탁월한 영장이다. 다윗이 악시를 하고 아삽이 작곡을 한 시편이 많을 것으로 추정이 되고,
아삽 스스로가 작시한 시편이 12개가 있는 것이다. 그 아삽이 시험에 들뻔 하였다. 그 이유는 성경의 중요한 주제인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시험드는 상황 때문에 시험에 들 뻔 하였다.
.
1~2절, 자신에게 시험이 다가 오는데, 그 시험 때문에 실족 하였다. 무엇 떄문에 그랬는가? 3절 ?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제 욕망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인간적으로 세상적으로 잘 되는 것을
보니, 마음에 시험이 드는 것이다.
4절, 5절 ? 그들은 죽을 때도
아무 문제가 없고, 교만한 모습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고 하나님을 무시하며 살아간다.
그런데도 그들의 생활은 더 형통하고 평안하다. (12절) 그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을 돌아보니 비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허무함을 느끼는 것이다. (13절) 그가 이문제로 고민을 하다가 시험에 든 것이다.
성경의 한 책이
그 문제를 가지고 고민한 책이 있다. 욥기이다. 또,
시편의 한 편도 그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는 한 편이 있는데, 시 37편이 그것이다. 시편 37편이 이 신정론에
대해 고민하다가 답을 얻는 시편이고, 이 37편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인 8복에 근간이 되는 시편이다.
이 신정론의
문제(과연 하나님이 옳으신가?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가 이세상에 존재하는가?
) 를 가지고 고민을 했는데, 아삽이 자신의 신앙 수준, 안목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문제로 실족할 뻔 하였고,
거의 그 발이 미끄러질 뻔 하였는데, 어떻게 해결이 되었는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 그 문제가 풀렸다.(16~17절) 하나님의 임재앞에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계시해 주실 때, 그 문제에 대해 해답을 주실 때,
비로소 풀렸다. 악인의 형통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본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18~19절) 아무리
악인이 형통해 보의고 의인이 고통을 당하는 것 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는 반드시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무지할 수 있는가?’ 하며 자책하는
아삽의 시 이다.
우리에게도 이렇게
시험에 들고 실족하게 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 시험을 극복할 수 있는가? 내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 깨달음을 얻으면 그 문제가 풀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매일같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오는 것이다. 부지런히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앞에 예수님의 보배피를 의지해서
나오면 그 문제가 풀린다는 것이다. 내 모습 이대로는 나올 수 없는 허물진 인생이지만, 예수 보배피로 인해 담대히 하나님의 성소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임재하신 이곳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 앞에 나오면 우리가 시험을 피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살아가는 삶의 장소가 중요하다. 어느 곳에 머물러 있는가 가 중요하다.
내가 어느길로 행하는가 가 중요하다. 복있는 자와 복없는 자의 차이가 바로 그것이다.
복 없는 사람은 ? 악인의 꾀를 쫓으며, 죄인의
길에 서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있는 자가 복 없는 자다. 악인의
꾀는 악인의 생각이다. 내가 어떤 생각을
품는가? 내가 어떤 길로 행하는 가? 죄인의 길에 서있는가?
의인의 길에 서는가? 내가 어떤 자리에 앉는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가?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안에서 겸손한가? 그래서 우리가 어떤 자리를 고르는가, 어떤 길을 선택하는가 하는 것이 내가 복있는 사람이 되는
가 없는 사람이 되는 가를 가르는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 삶에 사활이 걸려있는 문제인 것이다.
음식도 마구
아무거나 먹을 것이 아니라, 잘 가려 먹어야 하고, 보는 것도 잘 골라서 봐야 하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다가 시험에 들기 쉽상이다. 그리고 내가 머물 자리, 내가 머물 길을 잘 골라서 택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딴 길로 빠지기 쉽상이다. 딴 길로 빠지면 시험에 들고 실족하고, 그 다리가 미끄러지게 된다는 것이다. 아삽이 시험에 들 뻔 하다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 극복이
되었던 것 처럼,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허락된 거룩한 성소의 자리에 내가 머물고 있는가를 돌아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비해 놓으신 의의 길, 평강의 길, 생명의 길로 행하며 살아가는가? 그것은 우리의
흥망, 성쇄, 사활이 걸려있는 중요한 선택인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 길, 의의길 평강의 길을 찾는가? 우리가 길을 찾으려면 지도가 필요하 듯이, 생명의 길을 위해서는 인생의 Map 이 필요하다. 우리의 인생의 Map 인 성경책을 찾아 펼쳐야 한다.
렘
6: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
그 선한 길,
옛적 길은 성경책 속에 보여져 있다.
아침마다 성소에 나와서 하나님 말씀속에 드러난 의의길, 생명의 길을
찾아내고, 우리 삶에 반드시 다가오는 이런 저런 시험을 극복하고 예수를 위하여 살아가고, 주님과 함께 동행해서,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의의길로, 평강의 길로 생명의길로 살아가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