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은 여기를 누르세요 by Pastorchoi 

 

0925 시편 80:1~19

1. 요셉을 양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자여 빛을 비취소서

2.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 앞에서 주의 용력을 내사 우리를 구원하러 오소서

3.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 빛을 비취사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소서

4.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의 기도에 대하여 어느 때까지 노하시리이까

5. 주께서 저희를 눈물 양식으로 먹이시며 다량의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6. 우리로 우리 이웃에게 다툼거리가 되게 하시니 우리 원수들이 서로 웃나이다

7.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 빛을 비취사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소서

8. 주께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열방을 쫓아내시고 이를 심으셨나이다

9. 주께서 앞서 준비하셨으므로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편만하며

10. 그늘이 산들을 가리우고 가지는 하나님의 백향목 같으며

11.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12. 주께서 어찌하여 담을 헐으사 길에 지나는 모든 자로 따게 하셨나이까

13. 수풀의 돼지가 상해하며 들짐승들이 먹나이다

14.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이키사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포도나무를 권고하소서

15. 주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줄기요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가지니이다

16. 그것이 소화되고 작벌을 당하며 주의 면책을 인하여 망하오니

17. 주의 우편에 있는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인자의 위에 주의 손을 얹으소서

18. 그러하면 우리가 주에게서 물러가지 아니하오리니 우리를 소생케 하소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9.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 빛을 비취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시편 80편을  하나님을 목자로 증거하고 있다.

아삽의 . 영장으로 소산님 에둣에 맞춘노래.  소산님 = 백합. 소산, 수산 같은 말이다.  에둣 = 증거.  , 증거의 백합 이라는 뜻이다.  소산님 에둣은 곡조명이다.   소산님이란 말은 이미 네번째 나온다. 45, 60, 69편에 나왔다.   시편의 공통점은 백합화 곡조인데,  백합화가 등장할 마다 내용은 영적인 싸움을 가리킨다.  그리고 싸움의 마지막 승리를 약속하는 시편의 말씀이다.   백합화가 영적인 싸움에서 나오는지 이유를 우리는 수는 없지만,  전쟁의 개선 장군이 백마를 타듯이 백합화는 영적인 싸움이 치루어지고 나타날 승리의 약속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80편도 마찬가지 이다.  영적인 싸움이 나타나고 승리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영적싸움을 우리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어 우리를 돌보시고 인도하시고 마침내 구원을 주신다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1 요셉을 양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자여 빛을 비취소서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이시고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이다.   구약과 신약에서 대표적으로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이심을 노래하는 시편중의 시편이 바로 시편 23편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한 목자로 증거하는 장은 요한복음 10장이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선한목자이신 우리 주님이 나타나는 장이다. 장은 서로 화답하는 장이라고 있다.

하나님은 목자이고 우리는 양들인데, 양들의 문제는 바로 근시안 이라는 것이다.  눈꺼풀이 내리 깔려서 바로 앞만 보고 살아간다.  우리도 그렇다.  내일 일을 알지 못하고,  무슨 일이 놓여졌는지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  근시안이면 목자의 인도를 따라가면 좋을텐데, 고집이 세다. “우리는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 53:6)  우리 문제는 멀리보지 못하고 앞에 무슨 함정이 있는지 구렁텅이가 있는지 맹수가 있는지 알지 못하고 목자를 떠나 하염없이 길을 잃고 헤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양들인 우리들을 안타까이 바라보고 계신다. 주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심이 마음이 안놓여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10:16) 그런데 우리는 뱀처럼 지혜롭지도 못하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지도 못하다.  그러니 세상가운데 살아가는 우리를 보시는 주님이 이리앞에 보내는 양같다고 생각하시며 안타까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들을 주님께서 버리지 않으시고 찾아오셔서 품에 안으시고 기르시고 인도해 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양의 목자이신 우리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려내신 하나님께서 길을 잃고 방황하던 우리들로 하여금 돌아오게하셨다.   오늘 본문에 여러번 그런 기도가 나온다.

3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 빛을 비취사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소서” 7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 빛을 비취사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소서

거의 같은 기도의 내용이다. 가운데 우리를 돌이키시고 뜻은 영어로 ‘restore us’ 이다. 회복시키다라는 말이다. 우리를 회복시켜 달라고 이제는 주님께로 돌아오게 해달라는 말이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 영혼의 목자와 감독이 되어 주신다는 것이다.   베드로 전서 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주님은 우리를 살피시고 먹이시고 기르시고 인도하시는 목자와 감독이시다. 

우리를 회복시키실 아니라,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는데, 우리 예수님은 양의 목자이시고 우리들을 작은 목자들로 삼아주셨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20:28)  교회의 일꾼들을 주님께서 작은 목자로 삼아주시고 세워 주셨다는 것이다. 교회 직분자이던 선교회의 기관장들 이던, 구역의 구역장이던, 교회의 모든 일꾼들은 양의 목자이신  주님을 따르는 작은 목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세움받은 사람들은 삼가하며 살라는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먹이시고 돌보시듯, 우리도 연약한 양들을 먹이고 기르고 돌보는 작은 목자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라는 것이다.   또한,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이미 주님의 양들이 자들 아니라, 우리 밖에 있는 길잃고 헤메는 양들까지 돌보라는 것이다. 

10:16 “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저희도 음성을 듣고 무리가 되어 목자에게 있으리라  우리에게 주님의 양들을 먹이는 사명과 더불어 읽고 방황하는 양들을 목자이신 주님께로 인도해야 하는 사명이 부여되었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가?  무엇보다도 80편의 기도처럼, 우리의 목자이신 하나님께로 나와서 하나님 저를 먼저 돌이키게 하옵소서,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얼굴 빛을 비추시고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평강의 길로 인도하소서.’ 하며 돌이키며 회복되어서 주님께서 주시는 양들을 먹이고 인도하는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