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그럴찌라도 저희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며 반항하여 그 증거를 지키지 아니하며
57. 저희 열조 같이 배반하고 궤사를 행하여 속이는 활 같이 빗가서
58. 자기 산당으로 그 노를 격동하며 저희 조각한 우상으로 그를 진노케 하였으매
59.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60. 실로의 성막 곧 인간에 세우신 장막을 떠나시고
61. 그 능력된 자를 포로에 붙이시며 자기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시고
62. 그 백성을 또 칼에 붙이사 그의 기업에게 분내셨으니
63. 저희 청년은 불에 살라지고 저희 처녀에게는 혼인 노래가 없으며
64. 저희 제사장들은 칼에 엎드러지고 저희 과부들은 애곡하지 못하였도다
65. 때에 주께서 자다가 깬자 같이, 포도주로 인하여 외치는 용사같이 일어나사
66. 그 대적을 쳐 물리쳐서 길이 욕되게 하시고
67. 또 요셉의 장막을 싫어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68. 오직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산을 택하시고
69. 그 성소를 산의 높음 같이, 영원히 두신 땅 같이 지으셨으며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불행하게도 배역의 역사였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거역하던 역사였다. 하나니께서는 계속해서 그들을 구원해 주시고 축복해 주셨지만, 그 구원과 축복을 멸시하고 자신들의 욕망을 좇아 계속 범죄하였던 범죄의 역사였다.
56절 ‘그럴지라도’ ?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축복의 역사를 받고도 “하나님을 시험하며 반항하여 그 증거를 지키지 아니하며, 저희 열조 같이 배반하고 궤사를 행하여 속이는 활 같이 빗가서,
자기 산당으로 그 노를 격동하며 저희 조각한 우상으로 그를 진노케 하였으매” (56~58절)
어떻게 그럴 수있을까? 그러나 그것이 우리 인간의 실상이다. 우리 안의 죄성을 그대로 두면 그 죄성을 그렇게 끌고 간다. 우리 죄성은 하나님을 거부한다. 하나님을 모시기 싫어한다. 하나님의 임재를 견딜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성에 사로잡히면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된다. 하나님을 버리게 된다.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비극의 원인 이었다.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2:19) 이 말씀 가운데 보면, 이스라엘 백성의 불행과 고통의 원인이 바로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든 죄는 하나님을 만홀이 여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대신 하나님을 무시하게 된다. 경멸하게 되어 하나님을 버리게 되고 하나님을 떠나간 인생에 대해 진노하신다.
5~62절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실로의 성막 곧 인간에 세우신 장막을 떠나시고, 그 능력된 자(이스라엘)를 포로에 붙이시며 자기 영광(이스라엘)을 대적의 손에 붙이시고”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게 결국 우상숭배에서 헤어나오게 되었는가? 그들에게 다가왔던 외침, 환란, 고통의 결정판인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다 와서 우상 숭배에서 벗어난다. 결국은 하나님이 내리시는 징벌 가운데서 우상과 결별하게 된다. 그때까지는 끈질기게 우상이 그들을 따라붙고 미혹하고 시험에 들게 하고 계속 범죄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바벨론의 심판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게 되었다.
만일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징벌을 통해서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게 된다면, 우리 앞에도 고통과 환란이 계속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너희 소자들아 와서 내게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함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시 34:11)
하신 말씀 대로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게 된다면 우리는 우상숭배에서 벗어날 수 있게된다.
욥31:23 “나는 하나님의 재앙을 심히 두려워하고 그 위엄을 인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느니라”
이것이 욥의 경건의 이유였다. 그는 하나님의 위엄을 심히 두려워 해서. 하나님의 재앙을 심히 두려워 해서 죄 질 생각 품고 살다가도, 하나님의 두려움 위엄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모세도 시편 90편에서 증거한다.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시90:11)
하나님의 진노를 깨닫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살게 된다. 욥이나 모세 뿐 아니라 은혜의 사도였던 바울도 고린도 후서 5장 11절 말씀에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구보다도 확신 했던 바울 사도 였지만, 하나님의 두려우심을 안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신구약 통틀어서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표지가 한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God Fearer’ 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체, 계속 우상에게 끌려다니며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께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신다. 이스라엘 민족이 너무 처참하게 망가지는 것을 견디지 못해서 돌이키신다.
65절 “때에 주께서 자다가 깬자 같이, 포도주로 인하여 외치는 용사같이 일어나사” 하나님이 갑자기 일어나셔서 그 대적을 물리치신다. 66~69절 “그 대적을 쳐 물리쳐서 길이 욕되게 하시고,
또 요셉의 장막을 싫어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산을 택하시고 그 성소를 산의 높음 같이,
영원히 두신 땅 같이 지으셨으며.”
결국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돌아오셔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신다. 그런데 우리편에서 필요한 한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회개’이다. 회개하는 자에게 회복의 역사가 임한다. 사55:6~7 말씀.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복의 역사를 이루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한가지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 바로 ‘회개하라’ 는 말씀이다. 우리에게 당부하시는 말씀이시다.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고 하나님을 떠나 멀리 물러가 죄를 지으며 살아왔지만, 그래서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의 책망과 징계가 임했었지만, 이제는 깨닫고 돌이켜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이 이름을 의지해서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이키는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받아주시고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