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9일 시편 78편 34~42절
34. 하나님이 저희를 죽이실 때에 저희가 그에게 구하며 돌이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고
35. 하나님이 저희의 반석이시요 지존하신 하나님이 저희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
36. 그러나 저희가 입으로 그에게 아첨하며 자기 혀로 그에게 거짓을 말하였으니
37. 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저희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치 아니하였음이로다
38. 오직 하나님은 자비하심으로 죄악을 사하사 멸하지 아니하시고 그 진노를 여러번 돌이키시며 그 분을 다 발하지 아니하셨으니
39. 저희는 육체뿐이라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로다
40. 저희가 광야에서 그를 반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함이 몇번인고
41. 저희가 돌이켜 하나님을 재삼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격동하였도다
42. 저희가 그의 권능을 기억지 아니하며 대적에게서 구속하신 날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37절 “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저희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치 아니하였음이로다”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향하는 마음이 정함이 없음이 문제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에 성실치 못하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로 출애굽을 경험한다. 홍해가 가로막혀 있지만 홍해를 가르고 홍해를 건너게 하신다. 그리고 광야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광야 생활 중에 불평이 많았다. ‘목이 마르다. 고기, 양파, 부추, 파를 먹고싶다. 왜 이런 고생을 시키는가’ 하며 불평이 많았다. 불평이 많다 보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거스르게 되었다. 불평과 원망의 문제는, 사람에 대한 불평과 원망이 결국에는 하나님께로 향하게 되는 것에 있다. 잠19:3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우리는 우리 잘못으로 잘못해 놓고 하나님께 원망하는 성향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얼마나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고 거스리고 반역을 하고 하나님을 시험을 했는지 모른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라는 명백한 명령에도 불구하고, 자꾸 하나님을 시험했다. 하나님을 시험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시험하는 문제의 뿌리는 불신앙이다. 정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실 수 있는가? 정말 하나님이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수 있는가? 하는 불신앙이 이스라엘 백성의 범죄를 낳게 된다.
오늘 본문에도 여러번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에 대해 나타나있다.
40절 “저희가 광야에서 그를 반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함이 몇번인고” 여기서 ‘그’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41절 “저희가 돌이켜 하나님을 재삼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격동하였도다” 42절 “저희가 그의 권능을 기억지 아니하며 대적에게서 구속하신 날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이스라엘 백성은 정말로 기억력이 짧았던 것 같고, 우리도 그런것 같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어떤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지를 너무 쉽게 잘 잊어먹는 특성이 있다. 우리의 망각속에 불신앙이 들어와서 모든것이 원망스럽고, 그 결과 하나님을 거스리고 반역하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성과 우리의 죄성이 같다. 그러면,
우리에게 소망이 없다는말인가?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처럼 가망이 없다는 이야기 인가? 사실 우리 스스로에게는 소망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있다.
38~39절 “오직 하나님은 자비하심으로 죄악을 사하사 멸하지 아니하시고 그 진노를 여러번 돌이키시며 그 분을 다 발하지 아니하셨으니 저희는 육체뿐이라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로다.” 우리의 모든 소망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 하나님의 인자하심. 하나님의 구속하심에 우리들의 소망이 있다. 오직 하나님은 자비하심으로 죄악을 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를 멸하지 않으시고, 무한한 자비와 긍휼로 받아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애 3:22~23)
아버지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무궁하신 자비와 긍휼이 바로 우리들의 소망의 근거란 말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신다. 우리가 진토임을 아신다. 우리 인생이 아무리 든든히 서 있는 것 같아도, 우리에게 정함이 없는 이유가, 마치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과 같다는 것이다. 본문 39절에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다” 고 말씀하신다. 바람이 불고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 인생도 그러하다. 우리의 인생이 60년, 70년 바람처럼 불고 지나가면, 어느 인생도 다시 이세상에 돌아오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늘 용납해 주시는 것이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신다. 아들이 아무리 못되도, 부모는 그 자식을 끝까지 용납한다. 이게 부모의 사랑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아신다는 것이다.
시103:10 “우리 죄를 따라 처지하지 않으셨으며 우리의 죄를 따라 갚지 않으셨으니” 만일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으셨으면 우리가 지금 어떻게 살아있을 수 있었을까?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시103:11~13) 이것이 우리의 소망의 근거이다. 우리가 담대하게 소망의 닻을 하나님께 둘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죄 짓고 거역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은혜로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셨기 때문에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겨주신다.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시103:14)
바로 여기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가 회개할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이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자신을 돌아보고 세상을 돌아보면 낙망이 되지만, 나 같은 죄인을 끝까지 용납해 주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가 하나님께로 담대하게 돌이켜 회개 할 수 있는 문이다. 롬 2: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회개캐 하신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랄 때 우리는 회개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고 계속 우리의 완악한 마음, 강팍한 죄성대로 우리가 행하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게 된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여호와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 저가 이스라엘을 그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리로다”(시130:7~8)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그리고 우리 자손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하나님께 있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의 능력으로 우리와 우리 후손들을 모든 죄악에서 구속해 주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