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시편 57:1~7

 

1.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재앙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2. 내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3. 저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찌라(셀라) 하나님이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4. 혼이 사자 중에 처하며 내가 불사르는 중에 누웠으니 인생 중에라 저희 이는 창과 살이요 저희 혀는 날카로운 같도다

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은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6. 저희가 걸음을 장애하려고 그물을 예비하였으니 영혼이 억울하도다 저희가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스스로 중에 빠졌도다(셀라)

7. 하나님이여 마음이 확정되었고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역사적배경} – [다윗의 믹담시, 영장으로 알다스헷에 맞춘노래.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에]

믹담’ (Golden, 금과같이 귀중한) 시 : 다윗의 보배로운 시. 시편16편도 다윗의 믹담시 이다. ‘알다스헷’ : 곡조의 이름. 의미 –
“Do not destroy” 멸하지 마소서. 다윗이 죽을 고비에 처해서 하나님께 멸하지 마소서’ 하고 기도를 하는 것.  다윗이 사울에 쫓기어 굴에 피하고 있을 지은 시. 사울이 부하들에게 다윗을 잡아 죽이라고 명령을 하고 자신도 쫓아 다니다가 다윗이 숨어 있는 굴에 들어간다. 사울은 다윗이 곳에 있는지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부대를 밖에 두고 자신만 들어가서 쉬고 있었다. 깊숙히에는 다윗과 부하들이 함께 있었고, 사울이 들어와 자고 있는 것을 부하들은 다윗에게 사울을 죽이라고 제안한다. 때, 다윗이 ‘Do
not destroy’ 라고 사울을 죽이지 말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하였고, 다른 의미로 사울에게 다윗이 ‘나를 죽이지 마소서’하고 요청하는 의미로 이 ‘알다스헷’이라는 히브리 단어가 쓰여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다. 다윗을 보호해 주시고 왕으로 삼으셨다.

다윗의 기도가 응답될 있었던 것은 다윗이 사울에게 긍휼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남에게 긍휼을 베풀면 자기가 긍휼을 받게 된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말씀중에
긍휼이 있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이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라는 말씀이 있다.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온 사울을 다윗이 죽이지 말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하고 긍휼을 베풀어 사울을 살려 보낸것이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보시고, 다윗이 자신을 멸하지 말라고 간구했을 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살려주신 것이다.  내가 남에게 어떻게 하는 가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내게 갚아 주신 것이다.  주기도문에도 이러한 원리를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이다. 
동일한 원리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자를 사하여 주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하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일 긍휼을 베풀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신다.

남이 나에게 상처입힌것, 잘못한 것, 손해 입힌것, 괴롭게 한것. 긍휼이 여겨서 용서해 주고, 하나님께서도 나를 긍휼이 여겨 주시게 되기를 바란다.  다윗은 사울에게 긍휼을 베풀었기에, 하나님께 담대하게 요구할 있는 것이다.  ‘ 영혼이 주께로 피하매’ 이것이 보배로운 원리이다. 우리는 주님께로 피해야 한다.  세상에는 유혹과 위험과 죄악이 많다. 이러한 것들이 인생을 망치려고 끊임없이 다가오는데 우리는 끊임없이 주님께로 피해야 한다. 시편
5:11~12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같이 은혜로 저를 위하시리이다” 

우리가 주님께로 피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신다.  다윗은 주님께로 피할 밖에 없었고, 그래서 주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2절 – 사람이 할수 있는 중에 제일 하기 어려운 것이 ‘생각하기’이다. 생각만 제대로 하면 정리할 있는 일들을 생각이 없이 흘러가는 대로 가다 보니, 밀려서 일이 흘러가는 대로 안좋게 가도 조절 없게 되는 것이다.  염려도 마찬가지 이다. 우리의 염려는 대부분이 쓸데없는 염려이고, 필요없는 걱정인데, 한번만 정신차리고 생각하고 정리하면 쉽게 풀릴일 인데, 우리의 육신이 바쁘고 피곤해 져서 그것이 힘들다.  생각한번 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면 언제 우리가 생각할 있는가?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는 생각할 있다.

기도를 하고 간구 하려면 기도할 제목들이 있어야 하는데, 자기 생각이 명료하지 않으면 기도 것들을 수가 없고 기도할 없다.  부르짖어 간구하는 가운데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정색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하면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열리게 된다. 기도하면 생각할 있다.  평상시에는 염려, 근심, 걱정에, 분주함 때문에 생각을 못하게 되다가도, 주님 앞에 나와 기도하다가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하며 문제가 해결할 수도 있지만,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듣고 문제가 해결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다윗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신 뜻, 그를 부르신 목적을 주신 것이다.  

2절”내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부르짖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는 것이다.

3절”저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찌라(셀라) 하나님이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인자와 진리’ 항상 같이 간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자만 베푸신다면 우리의 죄는 용서 받겠지만 우리는 항상 그자리에 머물게 것이다. 그리고 진리만 있다면, 우리는 죄짓고 나서 하나님께 용납을 받지 못한다. 회복의 시작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인자와 진리를 함께 보내셔서, 우리에게 인자를 보내셔서 죄짓고 방황하는 나를 용납해 주시고 용서해 주신 후에 진리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지를 알게 주신 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양자가 함께 필요하다.  그리고 두가지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속성, ‘사랑과 공의’에서 나온 것이다. 

2023-08-16T22:10:25-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