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고전 8:7-9
제목: “자유의 자발적인 제한”

고린도 교회의 문제 중 하나가 우상의 제물에 대한 입장차였습니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우상에 바쳐진 제물을 크리스챤들이 먹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니 그 제물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후자의 사람들은 세상에 오직 한 분 하나님이 계시고 우상은 없다는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식이 사람을 교만하게 해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게 만들었습니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전 8:1).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전 8:9). 우리는 자유를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갈 5:1). 죄의 종이었고 율법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총으로 자유케 하셨으나 그 자유는 남에게 거침이 되는 방임이 아니고 오히려 사랑의 기회로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 5:13).

그러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은총의 자유를 자발적으로 제한하여 남에게 거침이 되지 않고 오히려 사랑으로 남을 세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강제적으로 제한하면 인격화가 되지 않아 환경과 조건이 달라지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지만, 자원적이고 자발적인 제한은 사랑의 인격으로 우리를 변화시키게 됩니다(벧전 5:2).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 5:24). 우리는 옛사람에 속한 죄악의 성품과 함께 온갖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이고 이제는 성령으로 살아나 성령 안에서 생활하는 자들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갈 5:25). 이제는 십자가를 지고 성령으로 사랑하며 살 수 있게 된 자들입니다.

사람이 살아 갈 수 있는 세 차원이 있습니다. 율법의 차원과 자유의 차원과 사랑의 차원입니다. 율법의 차원에서 벗어나 자유의 차원에 들어와 살게 되었지만 자발적으로 자유를 제한하고 사랑의 차원에서 성령으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