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롬 6:1-2

제목: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를 범할 수 있을까?”

‘죄’ 라는 말을 현대인들은 달가와 하지 않습니다. 그런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용어를 사용하지 말고 대신 ‘실수’나 ‘잘못’이라는 말을 쓰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죄는 단지 종교적인 용어가 아니라 습관이고 생활양식이고 힘입니다. 그것은 사람을 부패시키고 타락시키고 파괴시키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실체입니다.

로마서 5장에서 바울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고 증거한 바 있습니다(롬 5:20). 이것에 근거해서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를 범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논리를 설파하던 반율법주의자, 즉 도덕폐기론자들이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바울의 답변은 “그럴 수 없느니라”라는 것이었습니다(롬 6:2).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롬 6:2). 여기서 바울은 우리의 신분이 ‘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의 모든 죄는 용서받고 우리의 옛사람은 처리된, 죄에 대하여 죽은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죄를 범할 때가 있는데 어떻게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신분과 상태를 구별할 수 있을 때 해결됩니다.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의 신분이지만 우리의 상태가 그 신분에 합당치 않게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바로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죄사함을 받으면 우리의 신분에 합당한 상태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죄 가운데 살던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 은혜 가운데 살고, 사랑 가운데 살고, 성령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 6:14).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갈 5: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3-14).

죄는 사람들을 사로잡는  강력한 힘입니다. 그러나 죄 보다 더 강력한 성령의 힘으로 우리는 죄의 종된 상태에서 해방된 자들입니다(롬 8:2). 죄에 대하여 죽었고 죄에서 벗어난 우리가 이제는 은혜 가운데서, 사랑 가운데서, 성령 안에서 항상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