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롬 2:11-16

제목: “율법과 양심과 복음”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주어진 것이 율법과 양심입니다. 율법은 대표적으로 십계명을 생각할 수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등입니다. 양심은 내적인 율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심의 소리를 따라 살아가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양심이 욕심과 죄악으로 인해 변질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양심있는 인간이라면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그 양심이 마비되었거나 화인 맞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 4:2).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이 필요합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 9:14).

율법은 흐려지기 쉽고 주관적으로 흐르기 쉬운 양심에 대하여 객관적이고 확실한 표준을 제시해 줍니다. 선악을 분별하고 옳고 그릇된 것을 판단하게 해 줍니다. 율법의 이러한 기능에도 불구하고 율법에는 한계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을 선하게, 의롭게 변화시킬 수는 없고 다만 그 죄를 깨닫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그의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율법이 판단과 정죄는 하면서도 인간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육신때문입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그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롬 8:3).

복음이 주어진 것은 율법이 육신 때문에 이룰 수 없었던 것을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니라”(롬 8:4). 복음에는 그러한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우리가 하나님께로 회개하고 돌아와 복음을 믿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게 되면 양심의 소리를 듣고, 율법의 명령을 받고, 복음에 순종하며 살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의능력으로 양심에 순종하고 율법에 순종하고 복음에 순종하며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딤후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