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롬 3:1-8
제목: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율법의 위치는 어떠한 것일까요? 그리스도인은 율법을 지켜야 할까요, 아니면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되는 것일까요? 오늘의 본문에서 바울이 논쟁을 벌이고 있는 상대방은 누구일까요? 바로 율법주의자 입니다. 율법주의란 사람이 율법을 자자구구 지켜서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주장입니다. 논쟁의 상대방인 율법주의자 입장에서 보면 바울은 반율법주의자인 셈입니다. 반율법주의란 사람이 은혜로만 구원 받을 수 있으니 더 이상 율법은 필요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반율법주의에 따르면 우리가 거짓말을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참되심을 드러내게 되니 문제될 것이 없게 됩니다(롬 3:7).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라고 하는 주장도 나오게 됩니다(롬 3:8). 더 이상 율법이나 윤리나 도덕은 필요 없게 되고 방임, 방종, 방탕이 허용되는 도덕폐기론에 이르게 됩니다. 최근 한국사회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구원파나 JMS 같은 종파들이 반율법주의를 신봉하고 도덕폐기론자가 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진리는 율법주의도 아니고, 반율법주의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도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고 하셨습니다(마 5:17). 바울 역시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고 하였습니다(롬 3:31).
분명 우리는 은혜로 구원받고 자유케 된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주어진 은총의 자유를 가지고 어떻게 살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입니다(갈 5:13).
우리는 율법의 정죄에서 자유케 된 자들이나 무법하게 살 수 있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법(갈 6:2), 성령의 법(롬 8:2), 사랑의 법(약 2:8)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법을 따라 살면 율법의 요구가 우리에게 이루어집니다. ”육신을 좆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라“(롬 8:4). 자동차의 운전에 비유하자면, 성령은 네비게이션이고 율법은 지도책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살다보면 율법을 지켜 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주의도 아니고, 반율법주의도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를 따르고, 성령을 따르고, 사랑을 따라 사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그러한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