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6일 시편 87편 1~7절
1. 그 기지가 성산에 있음이여
2.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3.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셀라)
4. 내가 라합과 바벨론을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
5. 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나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리로다
6.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셀라)
7. 노래하는 자와 춤추는 자는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
시편 87편은 고라자손의 시 곧 노래, 로 나타나 있다.
1~2절.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신다고 하셨다. 시온은 무엇인가? 시온은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더 사랑하신 이유는 바로 성전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온세계에 흩어져 있다가도 시온으로, 예루살렘으로 향하게 되는 이유도 그것이다. 구약의 시온은 신약의 교회와 같다. 예루살렘의 성전이 성전이 된 이유는 그 안에 금은보화 장식이 있어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상징하는 쉐키나의 구름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허여된 지성소 때문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성령은 어디에 거하시는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 3:16) 그래서 구약의 시온은 신약의 교회이다. 교회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시온을 사랑하시고 영광스럽다 하시고 시온을 세우신다는 말씀이 나오는것이다.
3절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
하나님께서 영광스럽다 하시고, 세상 사람들이 영광스럽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4절에서 ‘라합’은 왜 갑자기 나오는가? 라합은 누구인가? 여리고 성에서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맞이 해서 집 밖에 주홍색 끝을 달아서 저와 그의 가족을 구한 인물인데, 이 곳에 나타난 ‘라합’은 그 ‘라합’이 아니고, 각주를 참고 하면 바로 ‘애굽’이라고 되어있다. 라합은 애굽을 가리킨다. 동명이인이 아니고, 히브리어로 보면 그 철자가 다르다. 우리말로 음가를 번역해서 같은 ‘라합’이 되었지만, 실제로 글자는 다르다. 즉, 라합, 즉 애굽과 바벨론, 두로와 구스 같은 이방 민족도 시온을 가리켜서 영광스럽다 말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시온을 사랑하시고, 하나님은 시온을 영광스럽게 여기시고, 시온을 세운다고 하셨다.(5절) 즉, 이 시편 87편에 나타난 시온에 대한 약속은 곧, 오늘날 교회에 대한 약속이고 우리들에 대한 약속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영광스럽게 여기시고, 우리를 세워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 은혜, 영화를 받아든 우리들은 우리 모든 기쁨 모든 사랑이 이 시온에 있다고 고백하게 된다는 것이다. (7절) 7절에서의 근원은 샘물 근원을 말한다. 척박한 사막과 광야에서 사람들은 그 생수를 마시는 기쁨가운데, 노래하고 춤추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의 강수를 마시는 자는 그 삶이 노래와 춤으로 가득차게 되는데, 그 때 나의 모든 샘물 근원이 기쁨의 근원이 바로 내게, 시온에, 교회에 있다라는 것이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시84:4,5) 세상 어디에서 살아가더라도 시온, 곧 하나님의 교회를 향하여 그 마음이 활짝 열려져 있는 자는 복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허락해 주신는,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 신학은 시간을 강조하였다. 시간이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펼쳐지는 구속사가 펼쳐지고 전개되는 영역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중요하다. 우리가 세월을 아끼고, 구속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시간을 드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시간과 더불어 공간이 중요하다. 내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가 중요하다. ‘이 세상 모든 장소가 똑 같은 것이 아닌가?’ 하고 이야기 할 때, 일리가 있지만, 실제적으로 경험적으로 세상 장소가 다 똑같지가 않다. 교회에 있는 것 하고 공동묘지에 있는것과 같은 수가 없다. 교회에 오면 편안해서 잠이 오는데, 공동묘지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이 세상 모든 장소가 다 같은 것이 아니고, 교회가 다르고, 술집이 다르다. 그 공간에 작용하는 분위기가 다르고 힘이 다르다.
내가 하나님의 풍성한 은총과 사랑과 복을 받아 살아가는가? 아니면 계속해서 시험을 받고, 위험을 받고 환란속에서 살아가는가? 그것은 내가 선택해서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 상당부분 영향을 받는다. 잠언 4장에 이런 말씀이 나온다. “사특한 자의 첩경에 들어가지 말며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찌어다. 그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며 돌이켜 떠나갈찌어다”(잠4:14~15) 그 길로 가면 분명히 유혹이 작용하고 시험이 역사하는 일이 있을 것이 뻔한데 왜 그 길로 가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그곳에 들어가도 모든 시험과 유혹을 이겨냈다.’ 라는 것이 자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애시당초 시험 받는 자리, 유혹이 역사하는 자리, 환란이 덮쳐오는 자리는 가지를 말아야 한다. 대신 어디를 가야 하는가?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시17:15) 주님이 나를 긍휼이 여기셔서 그 얼굴 빛을 비춰 주시는자리, 예배의 자리, 말씀의 자리, 성도의 교제의 자리, 전도의 자리, 봉사의 자리에 머물고 행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은총과 복이 내게 약속 되어 있는 그곳에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어느곳에 잘못 들어가면 하나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주님을 의지하려고 해도 내 믿음이 발동이 되지 않는다. 거기에 강하게 역사하는 그 시험과 유혹의 힘에 내가 눌리게 된다. 거기에 사로 잡히게 된다. 내가 원치 않아도 그 힘에 사로잡혀서 끌려가게 되있다는 것이다. 내가 어디에 머물러야 할 까? 어느길로 행해야 할까? 시 16편에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시 16:8~10) 내가 머물러야 될 자리,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걸어야 할 길,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길이다. 거기에서 살고 거기에서 행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고, 우리를 부패시키고 타락시키려는 죄의 힘이 이 세상 가운데 작용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음부에 버리지 않으시고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않게 지켜주신다고 하셨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하나님께서 구약의 시온을 사랑하시고, 신약의 교회를 사랑하신 것 처럼, 그 시온의 백성들, 교회에 속한 지체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여기시는가?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사43:4) 라고 말씀하신다. 만일 우리가 그 시온 백성이 된다면, 하나님은 이중적으로 우리를 소유하게 되신다는 것이다. 우리를 창조하심으로 한번 소유하셨고, 구속함으로 또 한번 소유하셨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우리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이유는 두가지, 창조하고 구속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시온 백성들을 창조하심으로 하나님의 것이 되었고, 죄에 빠져서 파멸의 길로 치닫고 있던 우리들을 건져주심으로써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너는 내 것이다 말씀하실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에 때로 물을 통과하고 불을 지날 때가 우리가 해 당하지 않게 지켜 주신다는 것이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 43:2)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부어지는 축복이다. 이 아침에 우리에게도 이르시는 하나님의 말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영광스럽게 여긴다, 내가 너를 굳게 세울 것이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한 자로 여긴다.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내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도 주를 찬송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